태평천하. 채만식 독후감
1930년대 서울 평민 출신의 대지주인 윤직원 영감은 하인는 상전을 섬기기다 하고 그 대가를 바라지도 말아야 한다거나, 인력거 삯을 깍거나, 무임승차를 한다거나, 하등표로 상등석에 앉아서 관람을 한다거나, 소작인에게 땅을 부쳐먹고 살게 하는 것을 커다란 은전을 베푼다고 생각하는 구두쇠이며 무식하고 철면피이나, 몸체는 우람하고 신수가 훤한 72살의 늙은이이다.
그러나 그런 윤직원에게도 쓰라린 과거가 있으니, 그의 부친 말대가리 윤용규는 떠돌이 놀음쟁이였으나 출저가 불분명한 200냥의 돈이 생기고부터 착실한 살림꾼이 되어 억척같이 재산을 불려 천석꾼이 되지만 화작떼들에게 수십차례나 봉변을 당하고 결국 목숨까지 잃는 것을 20대에 직접 목격하고부터는 세상 모드를 증오하는 마음과 단 한푼이라고 아끼려는 구두쇠 기질까지도 생겼으나 일본인들이 들어 오고부터는 불한당(화적떼)들을 막아 주고 순사들의 보호까지 받게 되어 천하가 태평하게 되었다고 좋아하며 만족해 한다.
그래서 학교를 짓는 데는 한 푼도 내놓지 않으면서도 경찰서 무도장을 짓는데는 기부금을 아낌없이 낸다. 족보에 도금을 하여 새롭게 꾸미기도 하고, 양반(‘직원’이라는 향교의 우두머리, 본명은 윤두섭)을 사고, 양반과의 혼인을 위해서 가난하고 먼 양반 집에서 며느리들을 얻어들이고, 손자 종수와 종학이를 군수와 경찰 서장을 만들어 진짜 가문을 빛내기 위한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집안의 불화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서 며느리와 손자 며느리까지 앞에서는 순종하는 체하지만 뒤돌아서면 서로가 흉을 보며 시기하고, 아들 창식은 노름에 빠져서 다른 것은 돌보지도 않고 오직 가산 탕진에 몰두하고, 손자 종수는 군수가 되기는 커녕 방탕한 생활을 일삼으며 많은 돈을 날리고 심지어 아버지의 첩 ‘옥화’까지 건드릴 뻔하였고, 증손자인 경손이도 윤직원의 애인인 동기 ‘춘심’이와 놀아나고, 윤직원 영감도 ‘춘심’에게 빠져서 정신 없이 돌아간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자신이 점점 썩어 가는 것도 모르고 각자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면서 한껏 방탕한 생활을 누리면서 태평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경찰 서장을 만들겠다고 동경에 유학을 보냈던 둘째 손자 종학이가 동경에서 사회주의 운동에 연루되어 체포, 투옥되었다는 전보를 받고 윤직원 영감은 기절초풍하며 분통을 터뜨린다.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 “……그놈이 만석꾼의 집 자식이, 세상 망쳐놀 사회주의 부랑패에 참섭을 하여 으응, 죽일 놈! 죽일 놈!”하면서.
이 소설은 일제 강점하의 실상을 가족사 소설의 성격을 빌어 심도있게 표현하였고, 성격 묘사를 통해서 사회 전체의 실상을 암시하려는 성격 소설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으며, 일제 강점하의 현실을 ‘태평천하’라고 믿고 있는 주인공의 시국관에 대한 풍자를 한다. 즉 부정적인 인물들로 구성된 한 가족의 삶을 통해 구한 말 개화기 세대의 가치관을 분석하고 일제 강점하의 사회 현실 극복 방식을 풍자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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